칠레 독재자의 핵심 고문 이력...윤석열, 알고도 '인생 책'이었나

전직 대통령 윤석열씨가 '인생 책'으로 꼽은 [선택할 자유]를 쓴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칠레 독재 정권의 경제 노선 설계에 결정적 영향을 준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윤석열씨가 일으킨 12·3 비상계엄과 관련해 '헌법 개정(재선~3선)'이라는, 장기집권을 계획한 듯한 문구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수첩에서 발견되기도 했었죠. 윤석열씨와 프리드먼 사이에서 묘하게 교차하는 '자유'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윤석열씨는 지난 2021년 7월18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부친이자 경제학자인 고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의 추천으로 이 책을 접했다고 했는데요.  
윤석열씨는 "2007년 대검 검찰연구관을 할 때까지 책을 항상 갖고 다녔다"면서 "상부에서 이런저런 단속 지시가 내려오면, 프리드먼 책을 다시 읽어보고 '이런 건 단속하면 소비자의 선택할 자유를 침해한다'는 요약 보고서를 올리곤 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프리드먼의 주장을 소위 공권력을 제어하는 데 많이 써먹었다"며 "나쁜 규제는 없애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작은 정부, 시장 중심주의 입장을 집권 이전부터 단단하게 쌓아온 것이죠.  
피노체트, 17년 독재 중 3000여명 살해...수만명 고문·강제 추방

밀턴 프리드먼은 1976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신자유주의의 대표 경제학자입니다. 그는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로 공공부문 축소, 복지 축소, 노동 유연화 등을 전 세계에 전파했습니다. 그의 주장은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 등 정치인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죠.    
문제는 그가 군사 독재 정권에도 동일한 입장을 설파했다는 점입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석좌교수는 그의 저서 [자유의 길]에서 프리드먼에 대해 이렇게 지적합니다.
"프리드먼은 악명 높은 칠레의 군사 독재자 피노체트의 핵심 고문으로 기꺼이 봉사했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1973년 쿠데타로 정권을 전복하고, 다음 해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1980년 국민투표로 장기집권을 노린 신헌법을 성립, 1990년까지 독재자로 군림한 인물입니다. 
17년간의 대통령 재임 기간에 공식 보고된 숫자로만 3197명이 정치적 이유로 살해됐고, 수만명이 감금된 채 고문·강제 추방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반인륜적 만행을 저지른, 칠레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로 평가받고 있죠.  
경제 정책 청사진 제시한 프리드먼...독재엔 눈 감아

그는 프리드먼이 설계한 자유시장 경제 실험을 강행했고, 그 대가로 칠레 국민은 빈부 격차와 불평등 확대, 사회 불안, 저성장이라는 처참한 결과를 마주했습니다.  
대체로 프리드먼보다는 그의 제자들이 피노체트 독재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프리드먼 역시 그런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물입니다. 미국의 자유주의 월간지 <리즌(Reason)>은 2007년 3월호에서 이렇게 밝힙니다. 
"사실 프리드먼이 칠레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일은 단 한 번뿐이었다. 칠레 (경제개혁-기자 주) 프로그램에 깊이 관여했던 시카고대학의 경제학자 아놀드 하버거가 1975년 프리드먼을 칠레로 초청해 일주일간 강연과 공개 토론을 진행하도록 했던 것이다.
프리드먼은 그 방문 중 피노체트와 짧게 한 차례 만났다. 당시 독재자였던 피노체트는 프리드먼에게 자신이 어떤 경제 정책을 펴야 할지를 서한으로 정리해달라고 요청했다. 프리드먼은 이에 응해, 정부 지출과 인플레이션을 빠르고 강하게 줄이는 것, 그리고 보다 개방적인 무역 정책을 펼치는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그는 피노체트의 억압적인 통치에 대해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기회는 갖지 않았다."
<리즌>은 프리드먼과 피노체트의 느슨한 관계를 부각하며 프리드먼을 옹호하려 한 것인데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리즌>의 설명은, 프리드먼이 피노체트 독재 정권에 실질적인 정책 노선을 제시한 인물이었다는 평가와 맞물리게 됩니다.   
스티글리츠 "자유 옹호 윤석열, 기본적 자유 뺏기 위해 계엄 선포"

윤석열씨는 프리드먼을 자신의 '인생 책' 저자로 꼽을 만큼 열렬히 신뢰했습니다. 과연 그는, 프리드먼이 군사 독재를 자유의 이름으로 정당화한 과거를 알지 못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혹시 알면서도, 자신의 통치 철학과 묘하게 맞닿아있다 느낀 것은 아니었을까요.  
[자유의 길] 한국어판 서문에서 스티글리츠는 윤석열씨의 비상계엄 사태를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이를 막아낸 한국인들에 깊은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의 말입니다. 
"전 세계는,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자주 자유를 옹호했으면서도 기본적 자유를 빼앗기 위해 계엄을 선포했을 때, 이러한 모순을 명백히 목격했습니다.
한국인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불법적 권력 장악에 맞서 결집해,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을 보여줬습니다. 이제 한국인들은 자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더욱 깊이 성찰할 시간입니다."
윤석열씨가 말하는 '자유'는 누구를 위한 자유였을까요. 그가 깊이 감명받았다는 프리드먼의 철학은, 무엇을 선택할 자유였던 걸까요. 그날 새벽, 비상계엄이 해제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또 어떤 대가를 치러야 했을까요.